저희(저와 K양)는 콘서트표를 미리 받기 위해 도쿄포럼에 3시 30분이 조금 안돼서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이미 인산인해, 처음엔 이게 도대체 무슨 줄인가 싶었는데, 왜~ 아시잖아요? 빠순이에겐 남다른 포스가 있다는거?(찡긋) 세상에서 줄 서기 좋아하는 몇 안되는 종족이 일본인과 빠순이. 두개가 한꺼번에 결합되어 그런 결과가 나왔나 봅니다. 입장권이 있어 줄 서는 건 자리와는 무관, 오직 굿즈를 사기 위해 그 줄을 섰더란 말입죠. 저희는 S님으로부터 표를 받고는 굿즈는 포기하고 아직 못산 CD를 사러 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굿즈가 땡기지도 않았어요.;; 물론 취향 탓이겠지만 이번 굿즈를 본 순간 다 큰 아들래미 컴퓨터에서 야동을 발견한 어머니의 심정이 되어 차마 못보겠더라고요.
시간이 어정쩡하게 많이 남아 걸어서 긴자에 있는 야마노악기 본점에 CD를 사러 갔습니다. 감격스럽게도 1층 잘 보이는 곳에 John-hoon 코너가 마련되어 있고 자그만 화면에 메이킹 영상도 나오더군요. 비록 한류로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본격적인 한류 매장인 지하뿐 아니라 1층에 진열되어 있어 좋았습니다. 오가면서 사람들도 기웃거리기도 하고 말이죠. 무엇보다 덕분에 하루종일 관광하느라 혹사된 무거운 몸띵이를 지하까지 안끌고 가도 돼서 고마웠답니다.
다시 도쿄포럼에 돌아와 보니 입장을 시작하고 있더군요. 우린 끝을 알 수 없는 긴 줄을 따라 걸으며 혹시 아는 얼굴이 있나 찾아봤지만, 입장인원 5,000명 -_- 쉽진 않았습니다. 한참을 걸어 줄 끝에 섰는데 잠시 후 돌아보니 우리 뒤로 또 여러명이 줄을 서있고... 이 사람들 시간 내에 다 들어가나 싶었는데 의외로 캠페인 구보 수준으로 진행이 빨라서 30분 전에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 그 와중에 D언니를 봤습니다! ㅎㅎ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언니, 어째 3년 연속 도쿄에서 만난답니까아~ 아쉽게도 경황이 없어(입장하느라;;) 반가운 비명만 지르고 헤어졌습니다.
공연은 6시 50분이 조금 지나 시작했습니다. 살다 보니 예정 시각보다 일찍 시작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덕분에 10분이나 남았다고 마음놓고 화장실 갔던 K양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습니다. 지퍼나 제대로 올리고 나왔나 모르겠어요.
첫등장 모습은 기사 사진에 나온대로 왕자머리에 흰정장, 검은 부츠, 안에는 달라붙는 셔츠. 셔츠 단추를 몇 개 푼 게 아니라 몇 개만 잠근 상태로 나오셨더라구요.=_= 보는 내내 뛰어올라가 단추채워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프닝 송은 'きれいになったね (예쁘게 되었군요) '. 아~ 본공연은 앨범에 나온 순서대로 쭈욱~ 부릅니다. 덕분에 예습만 철저히 했으면 다음 곡이 뭔지 쉽게 알 수 있었죠. ㅎㅎ 이번에도 오퐈가 나오자마자 죄다 일어서시더군요. 저도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엉덩이 겨우 들고 일어났습니다. ㅠ_ㅠ 밴드는 장동민 닮은 키보드와 수염난 베이스는 빼고 멤버 반 이상이 바뀐 것 같았습니다만, 제가 안면 인식 장애가 있는 관계로 확신은 못하겠네요.
두번째곡은 君に逢いたい. 노래 부르기 직전에 중절모를 썼는데, 모자가 좀 작아서 잘 안들어가더군요.=_= 안쓰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은데 굳이 왜 쓰는지...;; 이 곡 초반부에 작은 삑사리가 났습니다. 음이 높은 부분도, 음정이 바뀌는 부분도 아니고 거의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 삑사리 난 수준. 너무 시작하자마자 목소리가 뒤집어져서 작년의 악몽이 떠오르더군요. 다행히 그 이후로 삑사리는 안났습니다만, 다음 곡인 'I say good-bye'를 부를 때 몸을 좀 사려 노래를 살리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올3,4월 내내 들었던 さくらTears의 차례에선 쟈켓을 벗었습니다. 좋게 말해 건강해졌고 직접적으로 말해 살이 찐 실루엣이 가감없이 드러나 바람불면 날아갈듯한 오퐈를 사모하는 늙은 소녀는 좌절하고 말았지요. 이 노래의 라이브는 제가 들은 세번(ABB, 팬미팅,콘서트) 중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오퐈가 많은 얘기들을 했고, 주변 사람들이 다 웃고 좋아했지만, 이놈의 귀는 일본에 가면 의사소통 쪽으론 쓸모가 없어서(흑흑) 남들이 오퐈가 한 말이 웃겨서 웃는지 어이없어 웃는지도 알 길이 없었답니다. 다만, 예전보다 훨씬 더 여유있게 콘서트를 진행했고 많이 느물느물해진 것 같다는 것만 분위기상 알 수 있었지요.
잠시 쉬는 시간, 작년 콘서트 때처럼 'endless sorrow'를 백뮤직으로 슬라이드 영상이 흘러나왔습니다. 아놔, 그게 뭡니까. 굿즈로 판 사진들 찍을 때 사진들이랑 기타 등등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이 가득 담긴 성인물입니다. 엉엉. 뭐... 그래도 내년 달력 찍을 때의 사진은 화사하니 좋습디다. 아, 콘서트장에서 달력 신청 받으면서 샘플 몇 장 전시해놨던데 정말 예쁘더군요.(츄릅) 벽에 붙여놓을 수 없는 게 안타까울뿐이예용.
2부가 시작되고 오퐈는 짙은색 바바리로 몸을 꽁꽁 싼채 등장해서 밴드 반주도 없이 MR로 '何も言えない'를 불렀습니다.(바바리맨이냐긔;;) 안에 뭔가 보여주기 위해 꽁꽁 싼 게 너무 빤히 보여 저와 K양은 노래에 집중 못하고 떨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안에 망사일까봐, K양은 아예 안입었을까봐 걱정을 사서 했지요. 음, 오퐈도 다음 무대를 지나치게 의식한 탓일까요? 2절 앞부분을 들어가는 타이밍을 못맞추는 실수를 했습니다.
다음곡은 공개 당시 많은 팬들과 관계자로부터 'John-hoon이 이런 곡을?'이란 생각을 하게 만든 'Noise'. 약간 옛스런 락풍의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오퐈는 드디어 바바리를 벗었습니다. 바바리 안에 공개된 것은 의외로 노멀(?)한 붉은색 야광 나시. 목걸이와 벨트 등등 요란한 체인을 휘감은 데다 오토바이 탈 때 끼는 장갑에 선글라스까지 꼈습니다. 완전히 드러난 오퐈의 팔뚝은 생각했던 것만큼 보기 싫진 않더라고요.;;;(뭘 생각한게냐) 반팔 입었을 때보단 덜 두꺼워 보이고... 그 왜 예전 뭔 특집 프로에서 듀스 흉내낸다고 입었던 나시 셔츠요. 그 때랑 많이 비슷해 보일 정도였어요. 팔이 하얘서 그런가 근육이란 느낌 보단 그냥 살 같단 느낌?; 본인은 그걸 위해 운동도 하고 다이어트도 했다는데, 별로 운동의 효과도, 다이어트의 효과도 안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_= 개인적으론 정훈이가 공들여 꾸민 외모나 액션 보단 노래 자체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이때부터 노래를 정말 잘 불렀거든요.
다음곡인 '地球人'이 본공연의 클라이맥스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노래 가사가 좀 빠릅니까? 그런데도 모니터도 안보고 정말 잘부르더란 말입니다. 아, 얘가 쓴거죠?;;; 아무튼 무대를 활보하며 신나게 부르는데 '와, 너 정말 가수 잘했구나' 싶은 게 뭉클하더라니까요. ㅎㅎ 슬픔의 프린스는 가끔만 하고 계속 이런 곡을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조금 다른 편곡의 You are not alone을 부르면서 정훈이는 칸포6 얘기를 했습니다. 뭐라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뭔가 말장난을 하며 작년에 했던 류의 개그를 한 것 같아요. 아, 이번 체류기간에도 칸포6 광고는 못봤습니다. 워낙 밤시간 때 짧게 보긴 했지만, 상점에도 작년 사진이 그대로 붙어 있는 걸 보면 뭔가 크게 홍보를 하거나 하는 것 같진 않더군요.
땀에 범벅이 된 정훈이는 위에 빨강색 점퍼를 입고 앨범에서 유일하게 한국어 노래인 '거울'을 불렀습니다. '지구인'과 함께 인기넘어 1, 2위를 다투는 노래죠. 그 앞에 하도 질러댄 탓인지 음을 조금 낮게 불렀지만, 제가 알아듣는 가사로 노래하는 오퐈는 제대로 감정을 잡고 있더군요. 저는 '닫힌 하늘'같이 대놓고 청승맞게 부르는 노래 보다 '거울'처럼 담담하게 부르는 쪽이 더 슬프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곡이 시작은 아주 평범하고 담담하지만 마지막 후렴구에 가선 가슴을 지잉~하게 만들어 주듯, 정훈이 역시 마지막에 가선 감정이 북받쳤는지 입을 삐죽거리다가 눈물 한방울을 순식간에 떨어뜨리더라고요. 그 눈물 떨어지는 짧은 순간이 참 그림같이 아름다왔습니다.
앨범 마지막곡인 '手をとって'을 남기고 '이게 마지막 곡'이란 말로 짜고 고스톱을 치자고 하더군요. 모언니 말론 이 노래에 맞춰 다같이 손을 잡고 흔들자는 일부 팬의 선동이 있다 해서 정말 그러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제 주변에선 없었습니다. 가짜 마지막 곡인 '手をとって'을 부른 후 John-hoon은 퇴장. 짜고 친 고스톱 판 선수들인 관객들은 다같이 '정훈'을 외쳤지만 오퐈는 꽤 오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의자에 앉아 퉁퉁 부은 다리를 잠시 쉬게 해주며 빤스까지 갈아 입고 나오나 왜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리냐 생각하고 있었습죠.
앵콜 무대에 튀어나온 오퐈는 두건에 티셔츠 차림. 예전엔 뭘 씌워놓으면 참 귀여웠는데... 몸 키운 우리 오퐈, 그저 늠름하단 생각만 듭디다.(씁쓸) 앵콜 첫곡인 'Smile' 다음곡은 예전 유영석 콘서트 때 채소연씨와 함께 부른 전설의 'A Whole New World'. 듀엣 파트너는 망사 스타킹의 코러스 언니(요우코상이었나요?-_-aaa)였습니다. 당연히 노래는 훌륭했습니다만, 채소연씨와 함께 불렀을 때의 돌발 즐거움이 없어 아쉬웠고, 두사람의 목소리가 너무 잘 안어울려 이벤트 삼아 차라리 정훈이 혼자 불렀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퐈는 1인 다역 음성이 가능하잖수?
'A Whole New World'가 마지막 곡이라고 또 뻥을 친 오퐈. 마지막곡을 남의 노래로 한 게 말이 됩니까? 게다가 밴드 멤버도 소개 안했고... 무엇보다 아침조회의 애국가격인 시리우스를 아직 안불렀잖습니까? 또 한번 '정훈'을 외치게 한 후 이번에는 밴드 멤버들이 먼저 등장했습니다. 베이스 아저씨는 나오면서 일어나라고 손짓을 하더군요. 쳇... 좀 앉아있음 안되냐구... 한시간 반 넘게 서있었다구. ㅠ_ㅠ
두번째 앵콜 무대의 첫곡은 역시 '시리우스'였습니다. 지난번 콘서트 투어 때처럼 굿즈로 판매되는 티셔츠를 약간 디자인을 달리하여 입고 나온 정훈이는 온갖 재롱을 떨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재작년 콘서트 때는 첫곡이 이 노래였죠. 그때는 바짝 얼어서 불렀었는데 2년 후 같은 곡으로 무대를 방방 뛰어다니다니 참 감개무량합니다. 언제 들어도 신나고 좋은 시리우스의 다음곡은 정훈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붉은 낙타'. 별로 좋아하는 곡은 아닙니다만, 그리 사랑해주는데 이승환옹은 이 노래 얘 주면 안됩니까?;;;
콘서트의 '진짜' 마지막곡으로 선택된 곡은 '君に出会った日から'. 붉은 낙타에서 너무 진을 뺐는지 마지막곡에선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지만 밴드 멤버들이 다 들어가고 난 후에 혼자 남아 여기저기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까지 해서, 끝까지 좋은 무대였단 생각이 듭니다. 한번이라 더 귀하게 느껴졌단 생각도 들고, 목상태로 봐선 투어 콘서트가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요.
이번엔 특파원이 몇 없어 어쩔 수 없이 후기를 제가 썼는데, 너무 오랜만에 썼더니 잘 써지지도 않는 주제에 길기만 하네요. ㅎㅎ 언젠가는 오퐈가 한국에서 콘서트를 하길 바라면서, 이만 자러 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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