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어두워진 그곳에 도착한 시각은 5시 무렵. 하지만 이미 꽤나 많은 수의 팬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습니다. 나이대가 다양하고 스타일도 다양한 여자들이 1층 로비를 가득 메웠어요. 남자는 딱 하나 봤습니다;; (커플인 듯, 어떤 여성과 같은 옷을 입은 남자였음) 사실 모두 지정좌석이니까 줄 따위 안 서도 되는데, 야광봉이 없는 가엾은 넘버투 저는 반드시 굿즈에서 그걸 사서 손에 들고 공연을 보고 싶었던 관계로 그 소모적인 줄서기를 시작했습니다. 입장을 시작한 것은 정확히 6시 10분 전. 예정보단 빨랐지만 사람들이 너무 우글거리니까 좀 빨리 들여보내줘도 좋았을 것을...;;(나중에 들으니 그쪽이 객석 앞 홀 공간이 협소해서 일부러 그랬다고 함다) 입장할 때는 가방 검사를 철저히 했어요. 저는 순순히 디카를 맡기고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스태프들의 일처리가 꽤 상콤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약 20명씩 끊어서 입장시켰음) 바로 굿즈줄을 서기 위해 달렸습니다. 거의 아프리카 물소떼... 우리도 이미 한 시간 줄 서느라고 다리가 약간 메롱한데도 열심히 그 줄 끝으로 달려갔는데... 아래층에서 파는 굿즈를 사기 위한 줄이 계단을 타고 주르르르 위층 객석 구석까지 이어진 순간 이미 틀린 게 아닐까 좀 근심했습니다. -_- 내 뒤의 일본 팬들은 처음 만난 사이였는데, 후쿠오카 공연을 보고 온 빠순이와 유엔 때부터 팬이었다고 (은근 자랑하는) 팬이 다정하게 잡담을 나누었습니다. 진정 그분 안에서 우린 모두 형제. 나도 유엔 때부터 좋아했다고 자랑해볼까 하다가 관뒀습니다.
시간은 완전 빨리 흘러갔고, 결국 공연 시간인 7시가 되었습니다. 공연 시간 직전 홀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객석으로 몰아가는 스태프에게 "저기, 여기 사람들 아직 줄 많이 서 있는데 공연 제시간에 시작함까" 물어보자 너무나 쿨하게 보장 못한다고 그러는 곰다;; ㅠ_ㅠ 그때부터 너무나 겁이 나서 도무지! 도무지! 더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외국에서나 여기서나 새가슴은 변함없으니...;; 그래서 앞으로 약 20여명을 남겨둔 상태에서 포기하고 공연장에 입장했습니다. 그러니까 간추려서 말하면 2시간 동안 아주 괜히, 아무 이유없이, 줄이나 서고 삽질했다는 거죠.
시작 전 무대는 작년과 비슷한 분위기. 길다란 쇠막대(조명이 들어왔나? 그럼 대형 전등인가? 불빛을 비춘 건지 거기서 점등된 건지 눈썰미 없어 모름)를 매달아 장식한 것 외엔 별다른 무대장치 없이, 왼쪽부터 키보드, 기타, 드럼, 베이스, 코러스로 밴드 배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르골 음색으로 신데렐라 애니메이션의 비비디바비디부 뭐 이런 노래나 존훈의 노래가 딩동딩동 울리는 가운데 시작은 약 15분 지연됐던 것 같습니다. (그냥 굿즈 살 걸... 하여간 간이 작아놔서) 시작 직전엔 새드송 멜로디가 딩동거렸던 것 같고... 모두가 착석하고 조명이 꺼지자 정훈이가 흰 양복을 입고 뛰어나왔습니다. 첫곡은 Ready To Go! "모리아가로~(불타올라봐~)" 소리를 지르며 스탠드 마이크를 잡고 쭉쭉 뻗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녀석은... 근육도 하나 없고 날씬하고 예뻤습니다. ㅠ_ㅠ 조명을 받고 흰 옷을 입고 있는 그 애는 정말 어떻게 그 나이냐, 캐사기! 란 생각이 들 정도로 반짝반짝 빛이 나고 특별했어요. 게다가 오프닝 곡이 내가 은근히 너무나 좋아한 비트 만빵인 노래라서 완전 신났습니다. 그런데... 흠, 관객들이 얘 나오자마자 일어난 거예요;; 이것은 작년의 서서 찬양하기 악몽이 떠오르는 시추에이션? 생각하고 있으려니 사실이었습니다. -_- 그 후 계속.. 계속... 서서 봐야 했습니다.
다음 곡은 The Best Of My Life. 싱글 들을 때 심지어 스킵했던 이 노래까지도 너무나 상콤하게 불러주니 어머나, 좋아서 어쩌나. 그런데 솔직히 얘가 이 노래 불러본 적이 레코딩 이후론 처음이지 않겠냐고. 중앙에 양쪽으로 모니터를 놓고 프롬프터 컨닝을 어찌나 흘끔흘끔 심하게 하는지, 조금 웃겼습니다. 안 보는 척하는 그 필사적인 몸짓이 애처로웠달까요. 틀에 박힌 인삿말을 건넨 후 정규 앨범에 있는 곡들을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좀 실수하더라도 응원해주시면 좋은 무대가 됩니다" 그런 멘트는 분명히 연습 부족하신 벼락치기의 화신 존훈이 부탁해서 넣은 대사인 듯하더군요;; 멘트들은 모두 대본에 의한 것이었고 역시 컨닝으로...
다음으로는 오르골, 바람의 맹세, 고독으로 이어지는 신곡 퍼레이드였는데, 말하기 부끄럽지만 닳고 닳은 제가 고독을 들으면서 울었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고독한가 봐요;; 얘가 얼마나 급박하게 공연을 준비했는지도 뻔히 알고(오르골인가? 들어가는 부분 가사 놓치기까지 했음), 가사 컨닝해가면서 부르는 것도 눈으로 보고 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얘를 지켜본 지가 벌써 7년 채워서 하나도 새롭거나 위대하거나 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이 애가 부르면 그 지루하기 짝이 없는 발라드가 날 울리곤 합니다. 완전 반칙이란 느낌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래? 하면서 다시 속는 느낌. 한없이 자랑스러웠어요. 너무나 예쁘고, 너무나 잘 불러서.
레코딩할 때 목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가 율의 이미지로 만든 노래란 이야기를 또 좀 하고, 자신이 작사한 노래도 하겠다고 한 후 '나는 너를 사랑한다'와 '하늘이 닫혔다'를 불렀는데.. 앨범에선 스킵하는 노래였던 하늘이 닫혔다가 현장에서 들으니 또 다른 맛이 있어서(근데 왜 네가 작사해놓고 또 가사 보고 부르니;;) 멋졌습니다. 따라 불러본 사람은 알겠지만 굉장히 부르기 까다로운 노래인데(숨 쉴 곳이 없;;;) 오히려 레코딩보다도 감동적으로 들렸습니다.
존훈이 무대 뒤로 사라지고 나자, 밴드가 잼 형식의 무대를 가진 후에 계속 이어서 '엔들리스 소로우'가 이어졌습니다. 티 위에 물감을 흩뿌린 것 같은 무늬가 있는 재킷을 입은 캐주얼해진 정훈이가 신이 나서 노래를 하셨죠. 그 뒤에는 내가 특히 좋아하는(이 블로그 제목) 임퍼펙트를 불렀어요. 이 뒤에는 멘트 중 나름 좀 재미있었던 부분이 이어졌는데, 엔들리스 소로우가 자기 광고에 나왔단 얘길 하면서 '감기에 걸리면 불러주셈' 하는 멘트를 하고 깔깔거리기도 하고. 이번 해에 자기가 원하던 것을 거의 이루었다고 여러분 덕이란 인사를 좀 한 후에, "여러분은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응원해주세요. 썰렁한 농담에도 웃어줄 건가요?" 이런 말을 한 후에 일본에서 유명한 개그맨 흉내를 냈는데, 일본 팬들은 무척 즐거워했지만 전 뭔지 몰라서 원;;; 하여간 뭘 흉내내는진 몰라도 귀엽긴 대박 귀여웠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그 개그맨.. 빨간 팬티 딱 한 장만 입고 그 유행어를 한다던데여 옷은 흉내 안 내서 캐다행)
이 뒤에 부른 곡은 이터널(레코딩보다 좀 못했다), 그 후에 팝송 한 곡(제목 모름. 굉장히 끈적끈적하고 섹시한 노래였다. 비트가 빠르지 않은데도 누군가 부둥켜안고 슬로댄스 땡기고 싶은...;;) 그 후에 얘가 다시 들어가고, 얇은 천으로 스크린이 내려와서 닭살스러운 멘트와 비공개 사진들로 만든 영상이 나왔습니다. 그걸 보고 나니.... 드디어... 드디어 그게 나왔던 거죠....
난 스포일러 피하느라고 정말 몰랐던 상태라서 보고 완전히 뒷목 잡고 쓰러졌습니다.
엔카 가수 존훈... ㅠ_ㅠ
파란 반짝이 재킷을 입고 키요시의 즌도코부시를 불렀는데, 그 현란한 꺾기와 댄스!! 보면서 너무 웃겨서 제대로 흥분했더니 실제로 뒷목이 아팠습니다. 관객들도 완전 열광했는데, 특히 지금까지 많은 곡을 들으면서는 박자 맞추기에 너무 힘들어하던 어르신 팬 언니 한분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건 완전 압권. ㅋㅋㅋ 무대 이쪽 저쪽을 오가면서 아주 간단한 팔동작을 한 것만으로 이렇게 좋은 걸 보니 역시 콘서트에선 춤을 춰야 한다고 다시 느꼈달까. 자기도 이 무대가 너무나 쑥스러운지 중간중간 외면하는 게 아주 또 귀여워가지구!!!
"제가 뭘 하든 응원해준다고 하셨져? 엔카가수가 되겠어여!" 이런 선언까지 하시고. ㅎㅎㅎㅎㅎ 끝나간단 말로 사람들 살짝 열받게 하신 후,
반짝이 재킷을 벗고 검은 셔츠 차림이 되어서 빨간 중절모를 쓰더니 '꽃 한 송이'를 불렀습니다. 역시 감동적인 노래야...
그런데 그 다음에 생각지 못한 '에버라스팅'이 이어졌어요. 전 정말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끝나간다더니 진짜 끝내고 있잖아. ㅠ_ㅠ 콘서트장에서 꼭 듣고 싶은 노래였지만 막상 마지막이란 두려움을 안고 들으니까 기쁘지 않았다규! 시원하게 쭉쭉 뻗는 노래가 정말 이승환 생각이 나게 했달까. 코러스가 더욱 웅장하게 깔려야 할 것 같아 좀 아쉬웠지만 너무나 너무나 흥분하며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마지막 곡은 이게 아니라 최근 싱글인 '처음 만난 날부터'였어요. 노래를 낭창낭창 부르더니 밴드 소개도 마치고, 정말로 산뜻하게 들어가버렸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계획된 앵콜'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막상 그분이 사라지면 항상 아쉽다니까요.
중년 여자에겐 너무나 힘겨운 스탠딩 공연의 막간을 이용해서 쉬고 있는데, 팬들을 좀 고생시킨 후에 정훈이가 얼웨이즈 앤 네버를 락으로 편곡한 노래를 부르며 튀어나왔습니다. 굿즈 중 'Love me love John Hoon'이라고 새겨진 티셔츠가 있는데 그걸 입고 위에다가 패딩을 입은 모습이...;; 진짜 겁나 어려 보였어요.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더라구요. ㅠ_ㅠ 역시 마이크대를 잡고 방방 뛰면서 이승환 흉내를 제대로 냈는데, 그 칙칙한 얼웨이즈 앤 네버를 이렇게 신나게 부르는 것은 정말 각별한 맛이 있더군요. 그 뒤엔 고딩 때 좋아했던 Still of the night을 아카펠라 분위기로 불렀는데, 그 후에 별빛 조명(객석까지 반사광을 쏘는 그 커다란 공 말이심)이 쏟아지면서 진짜 마지막 곡 '시리우스'를 불렀습니다. 가사 중에서 '올려다 본 하늘에 시리우스가 빛나고' 부분에서 멈춰서서 하늘을 보는 모션을 취할 때... 전 정말 걜 씹어먹고 싶었습니다. 내가 반했던 그때 그 얼굴을 하고 있는 그 사기꾼을!! 어쩜 좋아!! 모든 공연이 끝난 후 밴드들과 손을 잡고 무대 왼쪽 오른쪽 중앙 이층, 전체를 향해 아주 여러 번 구십도 절을 했는데 그거 보면서 주책맞게 저도 찡했어요.
앵콜 곡 중간에 정훈이가 허리에 차고 나왔던 굿즈 타월을 객석으로 던졌는데, 내 조금 오른쪽 뒤로 떨어졌습니다. 그걸 잡아채는 여인들의 몸짓은 정말 살벌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그 어떤 것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난 얼마만큼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자신 없었을 정도. 마지막에도 땀을 닦은 타월 하나를 반대쪽으로 던진 후 사라져갔습니다.
괜히 길었지만 정리하자면,
정훈인 무대에서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얼마나 행복한지, 노래와 상관없이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저까지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마이크를 내려서 얼굴이 제대로 보일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에 깜짝깜짝 놀랐고, 그렇게 예쁜데 저렇게 노래를 잘 하다니, 정말 저 앤 특별한 존재고 저 앨 좋아해서 저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좀 과장하자면, 정말 오랜만에 살아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거, 누군가를 이 정도로 사랑하고 교감할 수 있다는 거, 이 공간과 시간을 차지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오사카 공연엔 우리 넷 외에는 한국 관객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난 못 봤다) 전 그래서 마지막 부분 때 이쪽으로 온 정훈이를 향해 크게 소리질렀어요. 반말이라 좀 기분 상했을지도 모르지만, 널 응원하기 위해 한국에서 누군가가 왔다는 걸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걔가 노래하는 모습 때문에 행복했다고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정훈아! 잘 했어!"
들었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 말을 하니까 가슴 속이 확 뚫린 것처럼 시원했습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로 난 거의 공중에 떠서 우리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피로누적과 좋지 않은 위치선정 때문에 속이 뒤집힌 ㅂ에게 미안할 정도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도쿄 것은 훨씬 짧을 테니 부담 없이 기다려주세요. ^^ 리플 환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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