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걔가 이런 말을 했었죠. "네무이?"(졸려요?) 그 정도로 발라드 위주의 공연이긴 했습니다. 난 왠지 괴롭히고 싶은 마음에 졸립다고 크게 외쳐볼까 생각도 했으나, 얘가 금방 '죠단(농담)'이라고 하는 바람에.. 타이밍의 굴욕.
그리고 또 나름 준비한 팬서비스가 언제쯤이었는지.. 이때쯤이었던 것 같은데요. 용품으로 판매한 분홍색 작은 수건을 똘똘 뭉친 걸 가지고 땀을 좀 닦는 시늉을 하고 그걸 객석으로 던졌습니다. 한번은 아주 크게 팔을 휘둘렀는데 발밑에 떨어져 캐망신. (그거... 정말 정훈이 땀이랑 화장품이 묻었을까요?!) 키보드 주자의 땀을 닦은 것도 던졌는데, 그거 받은 사람 심정 복잡했을 듯. 보통 그런 물건이 나랑 연관 없다고 생각하고 덤덤하게 구경하고 있으면 달려드는 여자들이 좀 웃겨 보이지만, 이쪽을 겨냥이라도 하면 나도 그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광기를 띄게 되는 것이지요... -_-;; 이쪽으로 몸을 향하는 시늉을 하면 캐설렜지만, 아쉽게도 전 인연이 없었습니다.
이 콘서트에서 준비한 레파토리 중 가장 이슈가 될 만한 것은 역시 2월 28일에 발매될 예정인 싱글, '새드 송'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일 것 같습니다. '루루루~'로 시작하는 미디엄 템포의 노래로, 유엔 시절과 비슷한 이미지로 들렸어요. 임팩트가 강하진 않지만 역시 감미로운 우리 아이 노래(김정훈 노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따위 안 되는 거 잘 아시죠?)였고, 루루루로 시작하고 루루루로 마무리하는 수미쌍관 기법이 돋보였습니다. 흐흐흐~ 앉아서 불렀어요. 저희 동네에선 앉아서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노래였습니다. (앞에서 앉아주더라고.. 고맙게두...) 그런데.. 이 곡 끝나니까 다시 스탠드업. 고마운 일본 팬 여러분, 일어났으면 발광 좀 해주세요오~
이 뒤엔 '궁'의 율 왕자를 마음에 품었던 소녀들이라면 모두 반색할 만한 레파토리, '앵무새'가 이어졌습니다. 정말 하울하고 목소리가 비슷하다 보니 김정훈만의 무언가!를 느끼는 건 약간 무리였지만, 역시 애절해애절해~ 그래도 자기 입으로 '유르짱'이라니... 정훈아! 그건 좀...!! ('효린이랑 놀아줄 거지?' 같은 일인칭을 삼인칭으로 부르는 기법은, 귀여운 여자애가 하면 재수팅기고, 그 외의 인류가 하면 민망해지는 거란 말이야...)
'우리들 나름의 시'에선 중간에 노래를 멈추고 뭔가 멘트를 했는데 뭐였지? (뭘 기억하는 거냐 대체...) 어쨌든 그러고 나서 무반주로 다시 노래를 시작, 그 뒤에 밴드가 반주를 맞춰서 마무리했어요.
가장 기대했던 스틸 빌리브는 앉아서 차분하게 불렀습니다. 무대 연출을 조금 잘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눈이라도 뿌려주면 안 되겠니? 끝나고도 얼마나 썰렁하게 바람처럼 빨리 들어가버리는지, 아무리 짜맞춰진 앵콜이 있다 해도 이건 아니잖아~ 싶었습니다. -_-
불이 꺼지고, 각본에 따라 앵콜을 외치는 팬들... 저는 그 시간을 이용해 달콤한 다리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진짜 오래 걸리더군요. 이봐이봐, 매끄럽지 않아! 잡담하고, 하품하고, 근처 앉은 사람들 둘러보면서 시간을 죽였어요. 제 앞자리에 유난히 자주 자리에 앉는 팬이 있어서, 저 사람은 특히 재미가 없나 봐... 하고 살짝 걱정했는데(3번째 줄이면 분명히 팬클럽 자리일 텐데 말임다) 자세히 보니까 그 사람... 목발 짚은 분이었어요. 목발 신세인 걸 감안하면 반절 정도는 서서 구경했으니 얼마나 고됐을까요. 애절한 빠심...!
어쨌든 제 체감으로는 10분은 족히 지나서 정훈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AR에 맞춰서 '시리우스'를 한번 더 부르면서... 얘 팔자에 생반주 몇 번이나 불러봤겠어요? 애가 오히려 녹음 반주에서 편하더군요. -_-;; 복장은 이미 알려진 대로 아주 깔끔한 턱시도 차림! 나훈아 오빠 삘 난다고 누가 그랬는데, 정말이지 그때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팬들에게서 꽃다발을 받는 모습은 얼추 트로트 분위기가 나긴... 했.... ㅋㅋㅋ 다리가 날씬한 우리 사슴은 '시리우스'를 불러준 후, 다시 슬금슬금 무대로 돌아온 밴드와 함께 'Now and forever'를 불렀습니다. 누구 결혼식에서 부를 거라는데, 별로 인맥이 넓지 않은 김정훈이 축가를 부를 만한 지인이 과연 누구? 곧 밝혀지겠지만... 오늘이나 내일이겠군요. 식장에서 하객 좀 낚길 바랍니다. 그거 끝나고 드디어 대망의 라스트 앵콜곡인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이곳저곳에서 후기로 보셨겠지만 "조용한 노래예요" 하고 얌전..하고 감미롭게 1절을 부른 후, 드럼 소리와 함께 락커로 변신! '붉은 낙타'와 비슷한 무대를 보였습니다. 밴드 소개도 이때 했었고요. 개인적으론 코러스 인사 부분에서 짧게 노래를 맞춘 부분이 좋았어요. 베이스 옆에선 현 튕기는 흉내도 냈던 것 같아요. 본 건 많아가지구... 이 노래는 단연 이승환 삘이 강한 무대였습니다. 모두를 흥분과 열광에 빠뜨린 후 존훈은 인사하고 사라져 다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오면서 아까 귀찮아서 안 샀던 용품들을 샀습니다. 전 북클릿과 수건을 샀어요. 3천엔 어치를 사지 않아서 쇼핑백은 못 얻었습니다. 크흑~ 이렇게 작은 단회 공연에서 용품을 팔 거라곤 반신반의했기 때문에 어쨌든 그 아이돌 가수다운 광경이 므흣하더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이번 공연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이에요.
pro.
1. 뭐니뭐니해도 김정훈은 좋은 목소리에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가수입니다. 첫 콘서트, 완전히 혼자서(게스트조차 없이) 진행한다는 것이 쉽진 않았을 텐데 훌륭하게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귀가 즐거웠어요. 음향도 훌륭했고요.
2. 이거에 대한 의견은 각각이겠지만, 재미없고 썰렁한 멘트가 없어서 전 좋았습니다. 솔직히 혼자서 뭐 말 길게 해봤자 별루~ 짧은 일본어지만 귀엽게 잘 소화했습니다.
3. 팬클럽 임원이 나서지 않는 현장이라 좋더군요.
con.
1. 표값을 듣더니 일본서 콘서트 좀 댕기는 지인이 놀라더군요. 표값에 비해서는 저예산 무대였음이 확실합니다. 공연 시간도 실제로는 약 1시간 40분 정도였으니까 짧았죠.
2. 콘서트 좌석 배열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보기에 A~D열의 양 사이드 자리들... 분명히 항의가 있었을 거라고 내기를 걸어도 좋습니다. 심하게 치우쳐 있어서 무대를 보기에 무리가 많았어요. 분명히 팬클럽들에게 앞자리가 배정되었을 텐데, 팬클럽 들어서 티켓을 우선배정받았는데 그런 자리다... 저, 못 참아연. 그 자리엔 의자 놓지 말았어야 합니다.
3. 의상마저 저예산! 옷은 딱 한번 갈아입은 셈인데, 김정훈이 물론 거적대기 둘러도 이쁜 얼굴이라 방만한 것도 이해가 가긴 합니다만... 그래도 비주얼적으로 좀 연출해주는 게 좋았어.
예상대로라면 아마 공연실황도 나올 듯하고, 싱글이 몇 번 나오고 나면 올해 안으로 10곡 이상이 담긴 정규앨범이 발매될 것 같습니다. 콘서트도 어쩌면 1년 안으로 다시 있을 수 있겠죠. (정규앨범과 연관한 이벤트로서) 사실 전 가고 싶어요. 1년 안에 하면 도저히 갈 수 없겠지만 콩나물 값 아껴서 어떻게든 한 번 더 가고 싶을 정도로, 다른 가수의 무대를 참지 않아도 되는 풍족한 노래상을 받아보았습니다. 김정훈이 가지고 있는 그 천연의 목소리, 그 애의 범죄적으로 단정하게 빠진 얼굴, 무대 위에 있는 그를 올려다보는 순간 체험한 그 종교적인 감동을 한번 더 맛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여건상 많은 장애를 뚫어야겠지만 말이죠. 일단 다시 콘서트에 가고 싶은 걸 보니, 그 공연 괜찮았던 거 맞겠죠? ^^
김정훈, 수고했다! 일본어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 공연은 확실히 제이팝 가수로서 하길 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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